르메르·토템·더로우가 조용히 시장을 장악한 이유

트렌드에 지친 럭셔리 소비자가 Timeless Wardrobe로 이동하고 있다.

르메르·토템·더로우가 조용히 시장을 장악한 이유

마이크로 트렌드의 종말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최근 럭셔리 섹터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에서 약 50만 명의 소비자가 럭셔리 소비를 이탈했습니다. 가격 인상의 한계치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50만 명의 지갑은 어디로 향했을까요?

Lemaire | Spring/Summer 2026

더 비싼 하이엔드나 SPA 브랜드가 아니었습니다. 소비자들은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는 '타임리스 워드로브(Timeless Wardrobe)' 포지션의 브랜드로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틱톡(TikTok)이 매주 새로운 마이크로트렌드를 쏟아내는 피로감 속에서, 역방향으로 묵묵히 성장 중인 세 브랜드의 비즈니스 문법을 분석했습니다.

Toteme Spring 2026

B2B 오더 패턴이 증명하는 '시즌 리스'의 힘

바잉스퀘어의 홀세일 실거래 데이터에 따르면, 이 세 브랜드의 오더 패턴에는 명확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압도적인 재오더율'과 '계절 노이즈의 부재'입니다.

마이크로트렌드 기반 브랜드들이 버즈(Buzz)가 있을 때 오더가 반짝 상승했다가 금세 끊기는 것과 달리, 이 브랜드들은 한 번 진입한 바이어가 계절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반복 오더를 넣습니다.

The Row Summer 2026

브랜드별 3색 성장 전략

① 르메르 (Lemaire): 광고 없이 10배 성장
2019년 1,000만 유로였던 매출이 2024년 1억 유로로 뛰었습니다. 최근 상하이와 베이징에 연달아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크리스토프 르메르는 "우리는 비즈니스 플랜에 열광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확장은 기획된 전략이 아니라, 시장이 브랜드를 강하게 원해서 따라간 결과일 뿐입니다.

② 토템 (Toteme): 재고 위험 제로
연 매출 1억 1천만 달러 규모의 토템은 투자사(Altor)로부터 "패션 위험(Fashion Risk)이 없다"는 극찬을 받습니다. 전체 컬렉션의 40%가 캐리오버입니다. 창업자 엘린 클링은 타깃 고객을 "매 시즌 옷장을 바꾸기보다 자신만의 유니폼을 고수하는 여성"으로 정의했습니다.

③ 더로우 (The Row): 보이지 않기를 선택한 1조 원 브랜드
샤넬(Chanel)의 오너 가문과 로레알(L'Oréal) 상속자로부터 투자를 받으며 10억 달러(약 1조 3천억 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이들은 떠들썩한 소셜 미디어 계정도, 광고도 없습니다. 심지어 런웨이에서는 게스트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합니다. 가시성에 의존하는 패션계에서 철저한 '통제와 희소성'으로 가장 가치 있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TOTEME Fall/Winter 2026

소비자는 왜 이들에게 지갑을 여는가?

세 브랜드의 전략은 제각각이지만, 관통하는 소비자 심리는 하나입니다.

  • 마이크로트렌드 피로감
    매주 쏟아지는 "이번 시즌 필수템"에 지친 소비자들이 "이 옷을 5년 후에도 입을 수 있는가"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 현명한 소비의 재정의
    물가와 관세 상승 압박 속에서, 자라(Zara) 재킷 5개를 매 시즌 사는 것보다 르메르 재킷 하나를 5년 입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합리적 계산이 작동합니다.
  • 시장 공백의 선점
    럭셔리의 가격은 너무 멀어졌고, 패스트패션은 가볍습니다. 토템($450~600), 르메르($600~900), 더로우($1,500~3,000)는 각기 다른 가격대에서 "접근 가능하지만 완벽히 설명되는 품질"이라는 빈자리를 정확히 채웠습니다.
AUTUMN/WINTER 2026 | LEMAIRE

리테일 바잉 가이드

비슷한 무드를 냈던 여타 브랜드들(Baserange, Auralee 등)의 오더가 멈춘 사이, 이 세 브랜드가 살아남은 핵심은 '스토리텔링의 지속성'입니다. "이번 시즌엔 무엇이 새로운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이 브랜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어떻게 더 깊어지는가?"를 기준으로 바잉해야 합니다.

Lemaire
아시아권 DTC 접점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홀세일 바이어라면 브랜드가 제안하는 '여유로우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무드를 매장 내에서 어떻게 큐레이션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Toteme
40%의 캐리오버 비중은 바이어에게 재고 위험이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새 컬렉션을 보기도 전에, 이미 베스트셀러를 안정적으로 재오더할 수 있는 구조를 십분 활용하세요.

The Row
극히 선별적인 파트너십을 요구하지만, 한 번 진입하면 가장 안정적인 충성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치트키입니다.

Women's Winter 2025 Collection | The Row

브랜드 스토리텔링


토템 창업자의 과거
창업자 엘린 클링은 1세대 유명 패션 블로거 출신입니다. 트렌드가 얼마나 빨리 식는지 패션계 한가운데서 목격한 인물이 '트렌드 없는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점이 토템의 뼈대입니다.

르메르와 유니클로
르메르는 유니클로 모회사(패스트 리테일링)의 지분 투자를 받았지만, 브랜드 운영은 철저히 독립적입니다. 메인 라인과 'UNIQLO U' 콜라보를 완벽하게 분리한, 업계에서 가장 세련된 파트너십 사례입니다.

더로우의 노폰(No-Phone) 정책
런웨이 스마트폰 금지 정책은 인스타그램 시대의 '희소성 전략'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 소셜 미디어가 패션을 장악하기 전인 2010년대 초반부터 고수해 온 창업자들의 순수한 철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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