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미스틱 러너스의 질주
러닝 클럽 굿즈에서 하이엔드 트레일 기어로 단숨에 진화한 베를린의 Optimistic Runners에 관하여.
2026년 6월 파리 패션위크(SS27 멘즈). 글로벌 매체 Vogue Business는 "러닝 브랜드들이 어떻게 럭셔리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는가"를 분석하며, 퍼포먼스 기어들이 부유층의 데일리 워드로브로 편입되는 현상을 짚었습니다.
그리고 이 리포트에서 새티스파이(SATISFY), 쏘어(SOAR) 같은 굵직한 이름들과 함께 당당히 호명된 브랜드. 베를린에서 출발한 지 갓 3년 차에 접어든 인디펜던트 레이블, '옵티미스틱 러너스(Optimistic Runners, 이하 OR)'입니다.

창업자 안드레이 크라브초프(Andrei Kravstov)가 일본 홋카이도에서 첫 마라톤을 완주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이 브랜드는, 단순히 '러닝복'을 넘어 베를린 러닝 커뮤니티의 문화적 문법을 패션의 언어로 번역해 내고 있습니다.

2026년 현재 리테일 씬에서 가장 흥미로운 궤적을 그리고 있는 OR의 행보를 들여다봅니다.

2년 만의 3단 점프
OR의 성장 속도는 다소 비현실적입니다. 초창기 로컬 런클럽의 '브랜디드 머천다이즈(기본 싱글렛과 쇼츠)' 수준이었던 제품군은, 불과 2년여 만에 왁스드 코튼 느낌의 셸 재킷이나 심리스 발라클라바를 갖춘 풀 라인업으로 진화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 봄/여름(SS26) 시즌, 이들은 하이드레이션 베스트와 트레일 러닝 벨트까지 출시하며 자신들을 본격적인 '디스턴스·트레일 기어 시스템'으로 격상시켰습니다. 마치 파리의 새티스파이(Satisfy)가 몇 년에 걸쳐 밟아온 럭셔리 퍼포먼스의 경로를 무서운 속도로 압축 재생하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옷도 좋지만 잡지
'LUNGS'는 OR 팀이 직접 발행하는 자체 프린트 매거진(Zine)입니다. 단순히 시즌 룩북을 종이로 찍어낸 것이 아니라, 러닝이라는 행위를 둘러싼 철학과 문화를 다루는 에디토리얼 프로젝트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이번 파리 패션위크 기간 동안 LUNGS의 첫 정식 이슈가 다양한 인디 매거진들과 함께 론칭되며 조명을 받았습니다.
이들에게 콘텐츠는 옷을 팔기 위한 마케팅 수단이 아닙니다. "콘텐츠가 곧 브랜드의 본체"이며, 옷은 그 철학에 동의하는 커뮤니티 멤버들이 입는 유니폼에 가깝습니다.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100여 개 남짓임에도 팬덤의 밀도와 참여율이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조용한 질문들
파리에서 호명되고 호주의 유명 편집숍들에 걸리기 시작한 이 베를린발 브랜드의 움직임은, 국내 패션·라이프스타일 리테일러들에게도 꽤 흥미로운 생각거리들을 던져줍니다.

'새티스파이'의 우아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러닝과 하이 패션의 크로스오버 수요는 이미 뚜렷합니다. 하지만 기존 럭셔리 러닝 브랜드들의 높은 가격대는 편집숍 고객들에게도 꽤 단단한 심리적 저항선을 만듭니다. 태국이나 호주 등 주요 아시아·태평양 편집숍에서 OR은 새티스파이, 노르다(Norda) 등과 나란히 진열되면서도, 그들보다 한결 접근하기 편안한 미드-프리미엄 가격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감도는 유지하되 문턱을 낮춰줄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포지션이 비어있는지 돌아볼 만합니다.
서울이 아닌 '부산'을 먼저 찾은 이유
올해 5월 진행된 OR의 SS26 글로벌 론칭 투어의 피날레는 시드니, 자카르타, 그리고 '부산'이었습니다. 브랜드가 아시아 확장의 주요 거점으로 한국의 로컬 러닝 커뮤니티를 직접 짚어낸 것입니다. 홀세일 유통망을 깔기 전에 바닥의 '커뮤니티'부터 먼저 조직하고 검증하는 이들의 진입 방식은, 브랜드를 소개해야 하는 숍 입장에서는 이미 예열이 끝난 오븐을 여는 것과 같은 매력적인 조건일 수 있습니다.
가장 완벽한 시작점, 'AW26'
창업자는 최근 인터뷰에서 다가올 AW26(26년 가을/겨울) 시즌을 단순한 신상이 아닌 '완전한 리셋'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모든 패브릭 테크놀로지를 개편하고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부여했다는 것이죠. 만약 누군가 이 브랜드와 손을 잡는다면, 브랜드 스스로 "우리의 진정한 챕터 1"이라고 부르는 이 리부트 시즌이 가장 매력적인 타이밍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