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프코어의 패러다임 전환
시즌 트렌드를 넘어 현대인의 데일리 유니폼으로 정착한 고프코어 분석.
2024년, 글로벌 패션 매체 GQ는 "RIP Gorpcore(고프코어의 시대는 끝났다)"라며 고프코어 트렌드의 종말을 과감하게 선언했습니다. 도심 한가운데의 저녁 식사에 40리터 백팩과 침낭 매트를 매달고 나타나던 과잉된 연출을 가리킨 지적으로는 지극히 타당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2026년 현재, 바로 그 매체는 당시의 성급했던 평가를 정정했습니다. 패션계가 고프코어의 퇴장을 점치는 동안에도 아크테릭스(Arc'teryx)와 살로몬(Salomon)은 각각 연 매출 20억 달러(약 2조 7천억 원) 고지를 돌파하며 기록적인 성장을 이어갔기 때문입니다.
시장에서 잊힌 것은 고프코어라는 카테고리가 아니라, 이를 단기적인 '시즌 트렌드'로 읽어내던 시각이었습니다. 1세대 고프코어의 요란한 과시가 빠져나간 자리에, 고프코어는 이제 완전히 대체 불가능한 '현대인의 데일리 유니폼'으로 정착했습니다.

공급의 정상화가 만든 '트렌드 후퇴'라는 착시
희소성이 만든 화제성의 정점
초기 고프코어의 뜨거운 열기는 사실 상당 부분 공급 부족에서 비롯된 '품귀 현상'이 만들어낸 착시였습니다. 수요가 폭발하는 상황에서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공급 물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자, 리셀 프리미엄과 오픈런이 연이어 발생하며 화제성의 정점을 찍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살로몬의 XT-6나 아크테릭스의 셸 재킷은 주요 편집숍과 직영 매장에서 언제든 쉽게 접할 수 있는 '상시 상품'으로 완전히 정착했습니다.

희소성의 종말과 실수요의 확장
이처럼 리셀가나 오픈런 같은 희소성 지표로만 카테고리의 생명력을 판단하면, 현재의 안정화 국면을 '트렌드의 하락'으로 오독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열풍이 한풀 꺾인 것처럼 보이는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전환점입니다. 초기 하이프(Hype)가 빠져나간 자리에 대중적인 주류 소비자들이 고프코어 앵커 아이템들을 일상복으로 꾸준히 구매하는 '실수요의 확장'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2세대 고프코어의 문법: '절제와 대비'
2026년형 고프코어는 1세대와 정반대의 복식 문법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 1세대 고프코어 (과시의 시대): 머리부터 발끝까지 테크니컬 소재로 도배(Head-to-toe)하고, 거대한 상표 로고를 배지처럼 드러내는 과시형 스타일링.
- 2세대 고프코어 (절제의 시대): 트레일 슈즈나 테크니컬 아우터 같은 '앵커 피스 1~2개'만 남기고, 이를 테일러드 트라우저나 정제된 니트웨어 등 비(非)테크니컬 아이템과 결합하는 감각적인 대비.
심지어 패션 커뮤니티에서는 하드셸 재킷에 클래식 스니커즈를 매치하는 것에 대해 "기술적 진정성을 해치는 스타일링"이라며 금기시하는 스타일 규칙까지 공유되고 있습니다. 이는 고프코어가 일시적 유행을 넘어 하나의 단단한 '드레스 코드'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줍니다.

바이어를 위한 소싱 및 매입 설계
고프코어가 단기적인 '시즌 트렌드'를 넘어 '워드로브의 기본값'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리테일러분들의 매입 및 VMD 전략 역시 한층 유연하고 구조적으로 재편해 보시는 방향을 제안합니다.
'시즌 트렌드'에서 '상시 구색'으로의 전환 고려
고프코어의 앵커 아이템(트레일 슈즈, 하드셸, 플리스 등)을 단기 소진형 예산 구조에서 조율하고, 데님이나 화이트 셔츠처럼 연중 꾸준히 회전되는 핵심 카테고리(Core Line)의 관점으로 재배치해 보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랜드의 선제적 발굴 제안
1세대 대표 브랜드들이 이미 대중화·프리미엄화 단계를 거치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머렐 1TRL(Merrell 1TRL)과 같이 감도 높은 스포츠스타일 라인을 꾸준히 선보이는 후발 브랜드들을 한발 앞서 발굴해 보시는 방안을 추천합니다. 이는 매장의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마진 구조를 단단하게 다지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 EDITORIAL SMALL TALK
광고 없는 성장의 비밀
아크테릭스와 살로몬의 모기업 아머 스포츠(Amer Sports)는 자사 핵심 브랜드들의 주요 성장 동력으로 'Unaided Awareness(자발적 인지도)'를 꼽습니다. 대규모 상업 광고 대신 로컬 하이킹 클럽과 트레일 런 커뮤니티를 통해 형성된 자발적 팬덤이 브랜드의 강력한 하부 구조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트렌드의 바람이 바뀌어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매출을 유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