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의 속도를 거부한 알라이아
피터 뮬리에 퇴임 이후에도 후임 디렉터 선임을 서두르지 않는 알라이아. 스튜디오 체제와 리슈몽의 운영 방식.
2026년 1월 30일 금요일 오후, 글로벌 패션 씬의 시선이 알라이아(Alaïa)에 쏠렸습니다. 하우스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터 뮬리에(Pieter Mulier)와의 결별을 공식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창업자 아즈딘 알라이아(Azzedine Alaïa)가 2017년 세상을 떠난 뒤 스튜디오 체제로 컬렉션을 이어오던 하우스에, 2021년 첫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한 피터 뮬리에. 그는 5년 동안 브랜드의 규모를 두 배 이상 키우고, 메시 발레 플랫과 르 텍켈 백 등 상업적·비평적 히트작을 연이어 만들었습니다.
그가 떠난 지금, 알라이아가 마주한 전환점과 비즈니스의 다음 단계를 살펴봅니다.

피터 뮬리에가 남긴 5년의 유산
피터 뮬리에는 단순히 유행하는 아이템을 제시하기보다, 시장이 원하는 새로운 실루엣과 감도를 정확히 포착했습니다. 과도한 바이럴에 의존하기보다 재단 기술과 소재, 조형적인 디자인을 중심으로 알라이아의 존재감을 다시 키웠습니다.
- 메시 발레 플랫 (Mesh Ballet Flat): 럭셔리 마켓의 컬트 아이템으로 자리 잡으며 수많은 브랜드의 유사 디자인을 이끌었습니다.
- 르 텍켈 백 (Le Teckel Bag): 닥스훈트를 연상시키는 길고 조각적인 비율로 빠르게 인지도를 확보했습니다.
- 비즈니스의 성장: 뮬리에 재임 기간 알라이아의 독립 매장은 5개에서 20개까지 확대됐고, 브랜드 비즈니스 규모 역시 두 배 이상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빠르게 돌아가는 패션 산업 속에서도 충분히 실험하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겼고, 이를 바탕으로 알라이아를 다시 고감도 럭셔리 하우스의 중심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절제와 환원: FW26 라스트 쇼
2026년 3월 5일 파리에서 열린 그의 마지막 쇼는 화려한 이별보다 극도로 단순하고 절제된 '환원(Reduction)'에 가까운 무대였습니다. 오랜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인 라프 시몬스(Raf Simons)와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Matthieu Blazy)도 객석을 지켰습니다.
쇼 공간에는 알라이아 팀 전원의 초상을 담은 영상이 상영됐고, 좌석에는 이들의 사진을 담은 책이 놓였습니다. 뮬리에는 자신의 마지막 컬렉션을 개인의 작별보다 하우스 전체의 집단적 역량을 보여주는 무대로 만들었습니다.
자신은 떠나지만, 알라이아를 만드는 아틀리에와 스튜디오의 인재야말로 브랜드의 지속성을 만드는 핵심이라는 메시지를 남긴 셈입니다.

리슈몽이 선택한 스튜디오 체제
알라이아의 모기업인 리슈몽(Richemont)은 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 등 주얼리와 워치 사업의 비중이 큰 그룹이지만, 알라이아를 비롯해 끌로에(Chloé), 던힐(dunhill) 등 여러 패션·액세서리 메종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피터 뮬리에의 퇴임 이후 알라이아는 후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서둘러 발표하지 않고 내부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컬렉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리슈몽 패션 부문 CEO 필립 포르투나토 역시 다음 챕터가 알라이아를 특징짓는 '집단적 인재(Collective Talent)'의 힘을 바탕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새로운 스타 디자이너를 즉시 앞세우기보다, 아틀리에와 스튜디오의 연속성을 먼저 보여주겠다는 선택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아직 비어 있는 다음 자리
2026년 8월 현재 알라이아는 피터 뮬리에의 공식 후임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뮬리에는 7월 1일부터 베르사체(Versac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자리를 옮겼고, 알라이아는 당분간 내부 스튜디오 중심으로 컬렉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초기 후보로 언급되던 올리비에 루스탱(Olivier Rousteing)은 라반(Rabanne)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됐고, 13년간 라반을 이끌었던 줄리앙 도세나(Julien Dossena)는 브랜드를 떠난 상태입니다.
다만 알라이아는 공식적인 후임 후보군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정 디자이너의 이름보다 스튜디오 체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고, 이 기간 동안 브랜드의 창의성과 상업성이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지켜보는 편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바이어를 위한 전략
- 뮬리에 시대의 마지막 시즌에 주목
FW26는 피터 뮬리에가 알라이아에서 완성한 마지막 시즌입니다. 메시 플랫과 르 텍켈 등 뮬리에 시대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제품과 마지막 컬렉션을 함께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이어가 주목해 볼 만합니다. - 차기 CD 발표 전후의 전략적 재정비
후임 디렉터가 임명될 경우 브랜드의 전체적인 컬렉션 방향과 마케팅 언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차기 CD 발표 이후 첫 컬렉션을 확인한 뒤 바잉 비중을 조정하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 인터림 기간의 브랜드 에퀴티 관찰
디렉터 부재 기간 동안 알라이아 스튜디오가 선보이는 컬렉션이 에디터와 고객의 관심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정 디자이너 개인을 넘어 하우스 자체가 얼마나 강한 브랜드 에퀴티를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 EDITORIAL SMALL TALK
창업자 아즈딘 알라이아는 전통적인 패션위크 캘린더에 얽매이지 않고, 컬렉션이 준비됐다고 판단했을 때 자신의 일정에 맞춰 쇼를 선보인 것으로 유명합니다. 피터 뮬리에는 이러한 창립자의 독립적인 시간 감각 위에 글로벌 리테일과 상업적 시스템을 연결하며 브랜드를 성장시켰습니다. 이제 알라이아의 다음 과제는 명확합니다. 창업자가 남긴 독립적인 창작 정신과 뮬리에 시대에 확대된 글로벌 비즈니스를 어떻게 동시에 이어갈 것인가. 후임 디렉터보다 먼저, 지금의 스튜디오 체제가 그 답을 보여줄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