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 Sport의 NYFW 진입

바지 하나로 팬덤을 구축한 High Sport의 런웨이 데뷔와 비즈니스 전략.

High Sport의 NYFW 진입

맨해튼과 밀라노의 가장 감도 높은 골목에서 지난 몇 년간 조용히 퍼진 바지가 하나 있습니다. 로고도 없고, 지퍼나 단추도 없습니다. 무릎 아래서 살짝 벌어지는 킥 플레어 실루엣과 정교한 핀턱 한 줄. 아는 사람만 알아보는 이 옷은 하이스포츠(High Sport)의 ‘킥 팬츠(Kick Pant)’입니다.

현재 가격은 960달러. 결코 저렴하지 않은 팬츠지만 초기부터 모다 오페란디(Moda Operandi), Amaree’s 등 주요 리테일러에서 반복적으로 완판되며 브랜드를 대표하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WSJ 역시 2023년 하이스포츠를 별도로 조명하며 이 팬츠가 패션 업계 내에서 확고한 마니아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2021년 론칭 이후 킥 팬츠를 중심으로 입지를 넓혀온 하이스포츠가 이번 시즌 NYFW SS27 공식 캘린더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립니다. 공개 방식은 런웨이가 아닌 디지털 프레젠테이션입니다.

취향이 아니라 '머천다이징 설계'

창업자 알리사 재커리(Alissa Zachary)는 더 로우(The Row)의 머천다이징 디렉터 출신으로, 케이트(Khaite), 더 라인(The Line), 로제타 게티(Rosetta Getty) 등을 거치며 미국 컨템포러리 시장의 상품 기획을 경험한 인물입니다.

그가 정의한 브랜드의 포지셔닝은 명확합니다. 지나치게 미니멀하거나 반대로 장식적인 디자인 사이에서, 실제 일상에서 편하게 입으면서도 충분히 정돈돼 보이는 옷을 만드는 것입니다.

소재가 곧 본체
프랑스산 퍼포먼스 라이크라와 이탈리아 코튼을 혼방해 개발한 니트 소재를 이탈리아에서 생산합니다. 체형을 잡아주면서도 높은 신축성을 갖췄고, 풀온 방식으로 쉽게 입을 수 있습니다. 레깅스의 편안함과 테일러드 트라우저의 외관을 결합한 것이 킥 팬츠의 핵심입니다.

오렌지 팬츠의 역설
초기 판매에서 블랙뿐 아니라 오렌지와 브라이트 블루 같은 과감한 컬러 역시 빠르게 완판됐습니다. 이는 이미 검증된 핏을 중심으로 시즌 컬러를 확장하는 방식이 실제 판매에서도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듀프 생태계와 서브스택이 키운 브랜드 위상

하이스포츠의 흥행은 전형적인 ‘입소문 중심 유통(Word-of-mouth)’의 계단을 밟아왔습니다. Amaree’s 같은 로컬 부티크에서 시작해 모다 오페란디를 비롯한 프리미엄 리테일로 유통 범위를 넓혔습니다.

  • 원작자를 연상시키는 듀프: 컨템포러리 브랜드 페이보릿 도터(Favorite Daughter)는 유사한 크롭 킥 플레어 실루엣의 팬츠를 ‘The Alissa’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일부 패션 매체에서는 이 이름을 High Sport 창업자 Alissa Zachary를 향한 레퍼런스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브랜드가 이를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아닙니다.
  • 서브스택(Substack) 커머스의 수혜: 패션 뉴스레터와 서브스택에서는 “800달러가 넘는 이 팬츠가 정말 살 가치가 있는가”를 검증하는 리뷰가 반복적으로 등장했습니다. 제품을 둘러싼 이런 콘텐츠는 하이스포츠의 인지도를 확산하고 높은 가격에 대한 소비자 담론을 키우는 역할을 했습니다.

NYFW 첫 공식 캘린더, 관전 포인트

킥 팬츠라는 강력한 히어로 아이템을 가진 브랜드가 NYFW 공식 캘린더에 진입하면서 다음 단계가 시작됐습니다. 카테고리를 넓혀야 성장할 수 있지만, 지나친 확장은 소비자가 기억하는 ‘그 바지 브랜드’라는 선명한 이미지를 흐릴 수도 있습니다.

이번 SS27 디지털 프레젠테이션에서 주목할 포인트는 세 가지입니다.

  1. 카테고리 확장의 폭: 킥 팬츠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니트 톱과 드레스 등 인접 카테고리를 강화하는지, 보다 넓은 토털 컬렉션으로 확장하는지.
  2. Kick Pant의 지위: 여전히 컬렉션의 앵커 아이템으로 남는지, 새로운 제품군으로 브랜드의 중심이 이동하는지.
  3. 가격 아키텍처: 960달러의 팬츠를 중심으로 상의와 아우터웨어를 어떤 가격 구조로 구성하는지.

💡 EDITORIAL SMALL TALK


알리사 재커리의 이력에서 흥미로운 점은 디자인보다 머천다이징에서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The Row에서 머천다이징 디렉터를 맡고 Khaite, The Line, Rosetta Getty 등을 거친 경험은 High Sport의 상품 구조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히트 아이템을 빠르게 늘리기보다 검증된 핏과 소재를 중심으로 컬러와 길이, 카테고리를 조금씩 확장해온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이번 NYFW 공식 캘린더 진입은 High Sport가 ‘Kick Pant를 만든 브랜드’를 넘어 하나의 완성된 옷장을 가진 브랜드로 확장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첫 번째 무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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