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에 런웨이에 선 스튜디오 니콜슨
옷은 좋아하지만 패션은 싫어한다는 닉 웨이크먼. 16년 동안 거부하던 쇼를 열고 리브랜딩을 단행한 이유.
"저는 패션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옷을 좋아할 뿐이죠."
2010년 런던에서 브랜드를 창업한 닉 웨이크먼(Nick Wakeman)은 늘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녀의 철학대로 스튜디오 니콜슨(Studio Nicholson)은 지난 16년간 단 한 번도 패션쇼를 열지 않았습니다.

요란한 런웨이 없이도 전 세계에 충성스러운 팬덤을 구축했고, 바스락거리는 코튼 셔츠와 볼륨감 넘치는 치노 팬츠 하나로 '건축적인 웨어러빌리티'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6월 27일, 파리 멘즈 패션위크 기간에 이 고집스러운 브랜드가 화려한 오텔 데브뢰(Hôtel d'Évreux)에서 브랜드 역사상 최초의 런웨이를 열었습니다. 심지어 공식 캘린더에 이름도 올리지 않은 '오프 스케줄(Off-schedule)' 쇼였습니다. 그녀는 왜 갑자기 런웨이를 선택했을까요?

"This Is Who We Are"
웨이크먼은 이번 런웨이를 회상하며 "내 인생에서 가장 비싼 7분이었다"고 농담 섞인 진심을 털어놓았습니다.
사업 자금을 허투루 쓰기 싫어했던 그녀가 거액을 들여 쇼를 연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옷이 움직이는 걸 사람들이 직접 봐야만 했습니다. 웹사이트나 인스타그램의 멈춘 사진으로는 우리 옷의 핏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으니까요."

그녀의 말처럼 이번 SS27 컬렉션의 타이틀은 'This Is Who We Are'였습니다.
세상을 놀라게 할 파격적인 신제품은 없었습니다. 대신 브랜드의 시그니처인 '소르테' 팬츠를 더 고급스러운 본디드 가바딘 소재로 승격시키고, 찰랑거리는 플루이드 트라우저와 마리너 스트라이프 셔츠 등 기존 아카이브를 극한으로 정제해 무대에 올렸습니다.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을 좇지 않고, "언제 멈춰야 할지를 아는 조용한 권위"를 보여준 셈입니다.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글로벌 매거진 은 공식 스케줄에도 없던 이 조용한 살롱 쇼를 '파리 멘즈위크 7대 하이라이트'로 꼽으며 극찬했습니다.

16년 묵은 로고를 버리다
이번 파리 데뷔 무대에서 옷만큼이나 바이어들의 눈길을 끈 것은 새롭게 바뀐 로고였습니다.
웨이크먼은 "창업 초기 돈이 없어서 누군가와 부엌 식탁에 앉아 단돈 5파운드(약 8천 원)를 주고 만든 로고를 여태껏 쓰고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브랜드의 덩치가 커지면서 예전 로고가 마치 슈퍼마켓 간판처럼 느껴지자, 유명 서체(Antique No.6)를 활용해 16년 만에 대대적인 리브랜딩을 단행한 것입니다.

이 리브랜딩과 파리 데뷔 런웨이는 철저하게 계산된 '글로벌 스케일업'의 신호탄입니다. 웨이크먼은 낭만적인 이유로 런웨이를 열었다고 했지만, 옆에 있던 CEO의 시각은 정확히 비즈니스를 향해 있었습니다.
현재 런던, 상하이, 도쿄, 서울에 직영 매장을 운영 중인 스튜디오 니콜슨은 향후 중국에만 12개의 매장을 추가로 열고, 한국 시장 확장은 물론 뉴욕 진출까지 검토하며 아시아와 북미 시장을 향한 맹렬한 확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200년 뒤 우리가 달에 살게 되더라도 여전히 트렌치코트와 청바지를 입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웨이크먼의 이 철학은 다가오는 2026년 패션 마켓의 핵심 트렌드인 '의도적 소비'와 완벽하게 맞물립니다. 복잡하고 쓸모없는 디테일을 덜어내고, 최고급 소재로 유행을 타지 않는 건축적인 실루엣을 만드는 것.
화려한 디테일과 하입에 지친 글로벌 멘즈웨어 소비자들이 오라리나 르메르같은 브랜드에 지갑을 여는 지금, 스튜디오 니콜슨은 그 생태계에서 가장 단단하고 검증된 대안입니다.

실무 바이어를 위한 소싱 인사이트
리프레시 바잉 타이밍
한국 B2B 마켓에서 스튜디오 니콜슨은 한동안 폭발적인 신규 오더보다는 매니아층 위주로 잔잔하게 소비되던 브랜드였습니다. 하지만 파리 데뷔를 기점으로 글로벌 에디토리얼의 주목도가 다시 끓어오르고, 아식스 콜라보레이션 등 대중적 스킨십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