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허의 비틀린 실루엣
굼허의 디자인 언어와 런던·서울을 연결하는 브랜드 구조.
패션을 전공하지 않았던 진주의 한 학생이 런던의 패션 신을 주목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패션 다큐멘터리였습니다. 통역사를 꿈꾸며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났던 허금연은 이후 센트럴 세인트 마틴(Central Saint Martins, CSM)에 진학했고, 졸업 컬렉션으로 두 차례 로레알 프로페셔널 어워드를 받으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2017년 학사 졸업 컬렉션으로 L'Oréal Young Talent Award를, 2019년 석사 졸업 컬렉션으로 L'Oréal Professionnel Creative Award를 수상한 그는 CSM 역사상 두 차례 로레알 상을 받은 첫 학생이 됐습니다. 이후 2020년 2월 패션 이스트(Fashion East)를 통해 GOOMHEO의 첫 컬렉션을 선보이며 브랜드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굼허를 단순히 ‘런던 브랜드’라고 정의하기에는 중요한 축 하나가 빠집니다. 현재 GOOMHEO는 런던을 기반으로 성장했지만, 한국의 소재와 생산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서울과 런던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2026년 일본 첫 팝업에서도 GOOMHEO는 ‘런던과 서울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인 디자이너의 브랜드’로 소개됐습니다.

CSM에서 시작된 브랜드
허금연의 출발점에서 흥미로운 것은 정통 패션 교육을 받은 디자이너의 전형적인 경로와 조금 다르다는 점입니다.
2017년과 2019년 CSM 졸업 컬렉션으로 두 차례 로레알 프로페셔널 어워드를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고, 특히 2019년 석사 컬렉션에서는 바디수트와 실크 시폰을 활용한 강한 형태의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이후 2020년 Fashion East를 통해 GOOMHEO의 첫 컬렉션을 선보이며 졸업 컬렉션에서 구축한 디자인 언어를 하나의 브랜드로 발전시키기 시작했습니다.

패션계보다 인터넷이 먼저 반응하다
GOOMHEO가 이름을 알리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졸업 컬렉션이 패션 업계의 전통적인 평가만으로 소비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졸업 컬렉션의 독특한 실루엣과 이미지가 온라인에서 빠르게 퍼지면서 ‘밈이 된 한국인 디자이너’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이후 런던의 신진 디자이너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인 Fashion East에 합류했습니다. 2020년 2월에는 런던 패션위크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였고, 이후 Fashion East를 통해 네 차례 컬렉션을 발표했습니다.
이 과정은 GOOMHEO가 단순히 졸업 컬렉션의 화제성을 소비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이를 실제 브랜드 활동으로 연결한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입는 법을 다시 만드는 디자인 언어
GOOMHEO의 디자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정해진 착용 방식을 비트는 실루엣입니다.
디자이너 몸에 직접 드레이핑하며 형태를 만들고, 비대칭적인 구조와 과장된 볼륨을 활용합니다. 여러 개의 소매를 붙인 구조나 신체를 따라 밀착되는 바디컨셔스 실루엣, 비틀린 형태의 톱과 드레스 등이 대표적입니다.
여기에 스퀘어 토 부츠와 기하학적인 패턴, 니트웨어 등을 더하면서 관능적인 실루엣과 유머러스한 요소를 함께 풀어냅니다. 남성복을 기반으로 시작했지만 성별에 따라 옷의 형태를 엄격하게 구분하기보다, 신체와 옷의 관계 자체에 집중하는 방식입니다.
LVMH 프라이즈 역시 GOOMHEO를 젠더 플루이드한 남성복 컬렉션을 전개하는 브랜드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결국 GOOMHEO에서 옷은 단순히 몸을 감싸는 물건이 아니라 어떻게 입고 움직일 것인지까지 포함해 디자인하는 매체에 가깝습니다.

런던에서 만든 옷, 서울에서 얻은 기반
GOOMHEO를 이해할 때 런던과 서울을 분리해서 볼 필요가 없는 이유입니다.
디자이너는 런던에서 디자인을 전개하는 동시에 한국의 소재와 제작 기반을 활용해왔습니다. 2022년 LVMH 프라이즈 인터뷰에서도 한국을 오갈 때 현지의 자원과 기술을 활용해 이를 런던으로 가져온다고 설명했습니다. 코로나19 당시 한국에 머무르며 데님 생산을 진행한 사례도 이러한 구조를 보여줍니다.
즉 GOOMHEO의 정체성은 ‘런던에서 만든 한국 브랜드’ 혹은 ‘한국에서 생산하는 런던 브랜드’ 중 하나로 단순화하기 어렵습니다. 런던에서는 패션 신과 디자이너 네트워크를 통해 브랜드의 방향을 만들어가고, 서울에서는 소재와 생산 인프라를 활용하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이중 거점은 현재 브랜드의 확장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6년 일본 첫 팝업은 시부야 PARCO에서 열렸으며, 2026년 봄·여름 컬렉션과 시그니처 데님, 한정 아이템, 아카이브 제품을 함께 선보였습니다.

런던의 신진 브랜드에서 글로벌 리테일로
GOOMHEO의 이름을 넓힌 계기 중 하나는 2022년 LVMH 프라이즈 세미파이널리스트 선정입니다. 당시 약 1,900명의 지원자 가운데 선정된 세미파이널리스트에 포함되며 런던의 신진 디자이너를 넘어 국제적인 패션 브랜드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브랜드는 런던의 Machine-A, 미국의 H.Lorenzo 등과 같은 리테일러를 통해 유통됐습니다. 2026년에는 일본 시부야 PARCO에서 첫 팝업을 진행하며 새로운 시장과 직접 만나는 접점도 만들었습니다.
특히 최신 컬렉션과 시그니처 데님, 한정 제품, 아카이브를 함께 구성한 방식은 GOOMHEO가 졸업 컬렉션에서 시작된 화제성을 실제 상품 경험으로 연결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EDITORIAL SMALL TALK
GOOMHEO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화려한 런던 데뷔 자체보다 서로 다른 두 도시의 강점을 하나의 브랜드 안에서 연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디자인 언어를 만들고, 다시 서울의 소재와 생산 기반을 활용해 제품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일본과 같은 해외 시장으로 가져갑니다.
패션 브랜드의 글로벌화가 반드시 본거지를 하나의 도시로 옮기는 방식일 필요는 없습니다. GOOMHEO는 런던의 디자인 환경과 서울의 제작 인프라를 연결하면서, 한국인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특정 지역에 가두지 않고 브랜드의 구조로 만들어가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