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셉템버의 역발상 성장 공식
해외 누적 매출 500억 원을 기록한 르셉템버의 역발상 성장 전략.
국내 패션 브랜드의 성장 경로는 대체로 국내에서 인지도를 쌓은 뒤 해외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설명되곤 합니다. 하지만 모든 브랜드가 같은 순서를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디자이너 신은혜가 전개하고 하고하우스가 육성하는 컨템포러리 여성복 브랜드 르셉템버(LE17SEPTEMBRE)는 해외 프리미엄 유통 채널에서 먼저 존재감을 넓힌 뒤 국내 오프라인 접점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최근 주요 상권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거점을 늘리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단기적인 국내 지표만 보기보다 해외에서 쌓은 브랜드 인지도와 유통 경험이 국내 확장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볼 만한 사례입니다.

절제된 디자인 언어로 쌓아온 르셉템버의 정체성
르셉템버는 2013년 디자이너 신은혜가 시작한 브랜드입니다. 브랜드명은 디자이너의 생일이자 브랜드의 시작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9월 17일’에서 유래했습니다.
건축적인 실루엣과 정교한 테일러링, 절제된 색감과 소재 사용이 브랜드의 주요 특징입니다. 특정 유행을 빠르게 따라가기보다 시즌이 지나도 활용할 수 있는 디자인과 균형 잡힌 실루엣을 꾸준히 보여주며 브랜드의 이미지를 만들어왔습니다.
이러한 디자인 언어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바이어들에게도 비교적 일찍 알려졌습니다. 런던, 파리, 뉴욕, 도쿄, 두바이 등 주요 도시의 백화점과 편집숍을 통해 해외 유통을 확대하며 국내 시장과는 다른 경로로 브랜드 경험을 축적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하고하우스의 투자와 육성 아래 오프라인 유통과 글로벌 사업을 함께 넓히고 있습니다.

해외 시장에서 먼저 쌓은 유통 경험
르셉템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해외 유통이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브랜드 성장의 중요한 축이었다는 점입니다.
해외 프리미엄 유통 채널에 입점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인지도가 높은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시즌별 상품 구성과 가격대, 납기, 반복 주문 가능성, 브랜드의 디자인 정체성 등 여러 조건을 함께 충족해야 합니다.
르셉템버는 이런 과정을 거치며 글로벌 바이어와의 거래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현재 약 50여 개 해외 유통 채널에 진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누적 해외 매출 역시 50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전해집니다. 최근 가을 시즌 해외 바이어 수주 역시 이전 시즌보다 증가하며 해외 사업의 비중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 숫자들이 브랜드의 성공을 단정하는 기준은 아니지만, 해외 유통에서 반복적으로 선택받았다는 점은 르셉템버의 상품과 브랜드 정체성이 일정 수준의 시장 적합성을 확보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해외에서 쌓은 이미지를 국내로 연결하는 방식
르셉템버의 확장 경로는 일반적으로 많이 이야기되는 ‘국내 성장 후 해외 진출’과는 순서가 조금 다릅니다. 해외 프리미엄 채널에서 먼저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고 바이어와의 거래 경험을 쌓은 뒤, 이를 기반으로 국내 오프라인 접점을 넓히는 흐름입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국내 시장에 들어올 때 단순히 새로운 디자이너 브랜드로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해외 유통 이력과 브랜드 경험을 가진 상태에서 소비자를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컨템포러리 브랜드의 경우 가격만으로 경쟁하기보다 디자인과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한 만큼, 해외에서 쌓은 유통 이력이 국내 소비자와 유통사에게 하나의 참고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이를 모든 브랜드에 적용할 수 있는 공식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해외 시장에서 먼저 자리 잡기 위해서는 브랜드의 디자인 정체성과 상품 완성도뿐 아니라 안정적인 생산과 납품 체계도 함께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프라인을 통해 국내 접점을 넓히는 단계
최근 르셉템버는 해외에서 쌓아온 브랜드 경험을 국내 오프라인으로 연결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남동 플래그십 스토어를 비롯해 주요 백화점과 상권으로 매장을 확대하며 소비자가 브랜드의 소재와 실루엣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늘리고 있습니다.
온라인과 해외 도매를 통해 성장한 브랜드에게 오프라인 매장은 단순한 판매처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가 제품을 직접 입어보고 공간을 통해 브랜드의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르셉템버가 해외 유통에서 확보한 브랜드 이미지를 국내 오프라인에서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는지는 앞으로 살펴볼 만한 지점입니다. 매장 수 자체보다 해외에서 형성된 브랜드 가치가 국내 소비자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브랜드에 맞는 성장 공식
르셉템버 사례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반드시 국내 시장에서 먼저 규모를 키워야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디자인 정체성이 명확하고 해외 바이어가 이해하기 쉬운 상품 구성을 가진 브랜드라면, 해외 유통에서 먼저 시장 반응을 확인하고 이후 국내 사업을 확대하는 방식도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국내 팬덤과 대중적인 인지도가 강한 브랜드라면 국내에서 규모를 만든 뒤 해외로 확장하는 방식이 더 적합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경로가 더 우월한지가 아니라 브랜드의 상품과 고객, 가격대에 맞는 확장 순서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르셉템버는 해외 유통 경험을 먼저 쌓은 브랜드가 이후 국내 시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지켜볼 만합니다.